닥플 플러스
해외 봉사 '시혜주의' 벗어나야
최근 캄보디아 발 국제범죄로 인해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중국인 조직이 사기 범죄(fraud crime) 또는 스캠(scam)이라고 불리는 방식으로 한국인을 범죄에 끌어들여 통장을 도용하거나 인공지능(AI)딥페이크 기술과 SNS를 이용해 금전을 갈취했다고 한다. 마약 및 도박에 중독시켜 범죄에 가담시키거나, 고문살해 등 끔찍한 사건이 최근 10배 이상 폭증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2014년경 필자는 검찰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바로 112에 신고했지만, 당시 경찰의 대응은 실로 놀라웠다. 나이 지긋한 경관은 나도 어제 같은 전화를 받았었다. 별거 아니다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며 사건 접수조차 하지 않았다.
이러한 방만한 문제의식은 10여 년이 흐른 지금, G7을 바라보며 APEC 정상회의를 유치한 우리나라 국민을 속수무책으로 희생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평소 환자의 병증이 발생하거나 악화하기 전에 조기 발견하고 대응하는 1차 예방을 최상의 의료로 배우는 의료인으로서 사회적 문제의 조짐은 병리적으로 인지된다.지난해 캄보디아에서 의료봉사를 한 경험이 있는 필자는 코로나19 이후 폭증한 해외 봉사에도 중요한 원칙이 있어야 함을 실감하게 되었다. 캄보디아는 외국인들의 의료봉사에 관대한 국가다. 방문 및 활동 제한이나 허가 사항이 거의 없는 국가로 널리 알려졌다. 절차적인 어려움이 거의 없기에 국내 다양한 의료기관과 단체는 수십 년간 캄보디아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필자가 만난 캄보디아 국민의 의료수준은 여전히 처참했다. 군부 고위층이 아닌 서민은 의사 얼굴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의약품(OTC)조차 구하기 어려워 단순 상해나 국소 감염도 제때 치료하지 못해 중증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국민이 대다수이지만 캄보디아 정부는 자국 의료 발전에 무관심하다. 해외 유수의 의료진들이 앞다투어 방문해 수술하고 전문의약품을 배포하기 때문이다. 평생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한 캄보디아 환자는 무상으로 치료를 받자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전했다.
하지만 치료를 받고 기능을 일부 회복한 한 장애인 환자는 성실히 살아가기보다는 대도시로 나가 구걸을 하기도 한다.
한국 의료봉사단이 으레 비싼 약을 관대하게 나눠주는 것으로 여겨 진단 및 설명 등 진료행위의 본질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사례도 겪었다. 봉사를 마친 후 남은 의약품을 현지에 기증하지만 제대로 관리하고 유통하고 있는지 확인할 시스템도 없다.
해외 의료봉사의 목적이나 초기의 모습은 625 한국전쟁 시기 한국의 모습과도 겹쳐 보인다. 미군 부대에서 잉여분 식자재가 당시의 피폐한 우리 국민에게 일용할 양식이 되고, 미군들이 나누어준 초콜릿의 달콤함에 배곯은 어린이들이 느꼈던 감사함과 같은 감각이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 의료선진국 의사들이 의료 취약 국가의 지원을 의사 결정하며 고려해야 할 원칙은 이미 변화의 기점을 맞이하고 있다.
캄보디아에서는 국제 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ODA)가 폭증한 한국을 유복한 국가, 부자 국민으로 인지한다. 의료기술과 약품을 나누어주고, 휴양지에서 고액의 소비를 마다치 않는 K-국민은 이제 매력적인 범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짧은 준비만으로 현지에 방문하여 한국에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감사 인사를 받는 일이 혹시 수혜자를 무력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간주한 것인 아닌지, 복지나 사회적 혜택이 단순한 베풂의 형태로 주어지는 시혜주의의 연장선에 있는 것은 아닌지 통렬한 성찰이 필요하다.
열악한 의료수준을 구조적 불평등이나 권리의 문제로 보지 않는 시혜주의는 복지의 본래 목적인 권리 보장과 달리, 수혜자를 객체로 만들고 복지의 정당성을 외부에서 부여받는 구조를 오히려 공고화한다.
의료가 캄보디아 국민의 당연한 권리가 아닌, 은혜나 동정의 결과물로 지속되는 현상을 부패한 자국 정부가 해결할 수 없다면 의료선진국 의료인들은 현지 인프라를 구축하고 독립된 생태계를 훼손하지 않도록 더 높은 수준의 지원을 고안해 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시혜주의의 심리적 원인은 타인을 능력이 부족하거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게 하는 위계적 사고방식과, 이를 통해 자신의 우월감도덕적 정당성을 확인하려는 심리에서 비롯된다. 이 때문에 선진국 민간 NGO 등에서는 후원자들의 지원과 후원대상자들과의 관계성에 정교한 주의를 기울인다.
필자는 과테말라에 사는 한 가난한 가정의 소아청소년을 후원한 적이 있다. 필자의 작은 후원으로 조혼 위기에서 벗어난 아이는 학교에 입학해 정규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후원하는 동안 아이의 어머니와 편지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성장 과정을 함께했다. 하지만 후원을 주관한 단체는 해당 가정이 경제적으로 안정되자 현지의 환경과 시스템이 독립성을 획득하여 후원 관계를 마무리한다라는 전갈을 전하면서 자체적으로 후원을을 종료했다.
인정과 감사가 메마른 한국에서 소진된 의료진들에게 저개발국에서 받는 환대와 감사, 칭송은 어쩌면 평소의 피로와 불안은 물론 현지의 열악한 진료 환경도 견디게 하는 동기부여가 될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사적 감정이 아닌 지속 가능한 미래를 저개발국 스스로 개척할 수 있도록 자립 인프라를 구축하는 방안을 진중하게 고민하는 이성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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