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플 플러스
노병 앞에서 부르는 군가
지난 9월 27일, 제15회 한국 의학도 수필공모전 시상식 및 수필 심포지엄이 열렸다. 2024년 2월 발생한 의정 사태로 인해 의대생들은 1년 넘게 휴학하며 어려운 시간을 겪었지만, 그 고뇌 속에서 45편의 작품을 응모했고, 그 가운데 24편이 본선에 올라 9편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어진 수필 심포지엄의 강연자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에 모두 참전한 박경석 예비역 육군 준장이었다. 그는 문학의 힘과 보람을 주제로 연단에 올라 자신의 삶과 전쟁의 기억을 문학과 함께 풀어냈다. 그의 강연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순신 장군이 위대한 것은 단지 그의 애국심 때문만이 아니라, 난중일기와 같은 문학적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기록은 단순한 사실의 집합이 아니라, 후세가 길잡이로 삼을 수 있는 정신의 유산이다.
둘째, 그는 17세에 육군사관학교 생도 2기생으로 입교해 소위로 임관하였고, 1950년 6월 25일, 동기 330명과 함께 전선에 투입됐다. 그러나 첫날 전투에서만 86명이 전사했다. 그 끔찍한 기억을 기록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어, 그는 문학을 통해 전우들을 기렸다.
셋째, 1965년 파월 1진 맹호부대 제1연대 초대 재구대대장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그 직전, 훈련 중 부하가 잘못 던진 수류탄을 온몸으로 막아 산화한 강재구 대위를 기억하며, 그는 대령 7년, 준장 7년을 포함해 31년 군 생활을 기록과 문학으로 버텼다.
넷째, 예편 후에도 권력의 자리를 마다하고, 오직 전우들의 명예를 기리고 그들의 이름을 남기는 저술에 힘써왔다.
강연이 끝나자, 나를 포함한 세 명의 의사가 무대 앞으로 달려 나가 우렁찬 목소리로 맹호들은 간다를 부르기 시작했다.
자유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키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님들은 뽑혔으니/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가시는 곳 월남 땅 하늘은 멀더라도
잠시 후 단상에서 내려온 노병이 우리와 함께 주먹을 움켜쥐고 후렴을 합창했다.
한결같은 겨레 마음 님의 뒤를 따르리라/ 한결같은 겨레 마음 님의 뒤를 따르리라
그의 음성은 노쇠했지만 울림이 있었다. 객석에 있던 학생들, 문학계 인사들, 회원들이 모두 기립해 박수로 환송하는 모습은 숙연하면서도 감동적이었다. 한 문학인은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노병에게 드린 가장 좋은 선물이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3년 전 작고하신 장인어른을 떠올렸다. 그 또한 월남전 참전 용사였다. 국회의 인준을 거쳐 파병된 비둘기부대의 일원으로, 이동외과병원(MASH) 원장으로 근무하며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돌아가시는 날까지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같은 시대에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던 노병들은 이제 한 분, 한 분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갈 뿐이다(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 그러나 그분들이 피와 땀, 뼈로 지켜낸 전쟁은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분들의 육성을 생전에 듣고 가슴에 새겨야 한다. 기록과 문학은 단순한 과거의 보존이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건네는 가장 값진 유산이다. 그들이 남긴 노래와 글, 그리고 전우를 향한 충정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의무이며, 내일을 살아갈 후손들에게는 뿌리와 자긍심이 된다.
노병들은 언젠가 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져가겠지만, 그 정신은 기록과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우리가 부른 군가의 가락은 단순한 추억의 재현이 아니라, 역사의 증언이며 다짐이었다.
우리 후손들이 이 땅에서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그분들의 소망을 이어받아, 우리는 오늘도 그 노래를 다시 불러야 한다. 그것이 사라져가는 노병에게 드리는 진정한 경례이며, 미래 세대를 향한 가장 숭고한 약속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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