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플 플러스
"시스템만 있는 의료전달체계, 소송 당하기 딱 좋다"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는 소송 당하기 딱 좋다. 유홍열 대한외과의사회 병원위원회 이사(신일병원)는 지난 7일 열린 의사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단호하게 이같이 말했다. 유 이사는 서울 강북구에서 80병상 규모의 병원급 의료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의협신문]은 최근 유홍열 이사를 직접 만나 2차 병원 외과의 현실을 들어봤다. 그는 현재 2차 병원은 상급종합병원과 1차 의원 사이에서 정체성이 모호해지며 존립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특히 의료전달체계라는 시스템이 있음에도 상급종합병원과 경쟁해야 하고, 혹시라도 환자를 상급병원으로 전원했을 때 소통의 오류가 발생해 소송위험을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유 이사는 외과병원의 의료 모델은 삼각형 구조로 돼 있다라며 저난이도다빈도 질환은 1차 의료기관이, 중난이도중빈도 질환은 2차 병원이, 최첨단 암 치료나 중재 시술은 대학병원이 맡는 구조다라고 기본 개념을 설명했다.
이어 탈장, 맹장, 담낭 수술 같은 중난이도 질환은 2차 병원의 몫이 돼야 하는데 대학병원에서 응급 복부 수술 팀까지 꾸려 24시간 커버하고 있다라며 과거 대학병원에서 잘 하지 않던 비만대사 수술까지하면서 2차 병원 영역을 잠식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대학병원과 2차 병원 의료진간 소통에서불협화음이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
일례로, 자신이 당뇨병인 줄도 모르던 환자가 발이 썩은 채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신일병원을 찾았다. 이미 패혈증이 진행된 상태여서 상급병원으로 전원하기 위해 9곳에 연락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겨우 연락을 받아준 상급병원도 패혈증을 개선하면 받겠다고 했다. 3일 동안 매달려 항생제 치료로패혈증을 잡은 후 상급병원으로 전원했다. 하지만 상급병원에서는 왜 이제야 환자를 보냈나라는 부정적인 반응을 내놔허탈감을 안겼다.
유 원장은 의료전달체계라는 시스템만 있지 법적 안전망은 없다라며 대학병원과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2차 병원은 중간 고리 역할을 하다가 소송당하기 딱 좋은 위치에 있다. 만약 환자가 잘못됐다면 다른 병원에서 안 받아줘서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이 당신들책임이라는 말로 돌아오기 너무나 쉽다고 토로했다.
환자와의 소통도 문제다. 특히 환자의 인식은 의료진과 소통의 고리를 약화시키는 데 한몫하고 있다. 70대 환자가 맹장염이 의심돼 CT를 찍다가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 알고 보니 대동맥류 파열. 응급수술로 환자는 기적적으로 살았지만 그까짓 맹장염 수술쯤이야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팽배하다 보니 자칫 소송으로 이어질 수있다는 게 유 이사의 주장이다.
그는 환자들은 기저질환의 위험성을 모르거나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라며 2차 병원 입장에서는 환자의 모든 상태를 알기 어렵다. 70대 환자가 사망했더라면 바로 소송으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상급병원 의료진과 소통, 환자의인식문제는 언제든의료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유홍열 원장은 법률 지식이 보편화되면서 의학적으로는 문제없는 부분까지 법적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늘고 있다. 이런 상황들이 의사를 위축시키고 있다라며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의사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스템의 문제, 소통의 부재로 발생하는 문제까지 의사가 모두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라며 마음이 상하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법적인 불이익을 받거나 수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은 견디기 힘들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의료행위에 대해 법적 책임을 져야 할 때 시스템 문제를 참작하고 의사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라며 이것만이라도 마련되면 의사들이 소신껏 진료하고, 의료전달체계에서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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