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플 플러스
트랜스 휴머니즘과 존엄한 죽음
몇 해 전 미국의 과학칼럼니스트 이브 헤롤드는 저서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에서 인류는 머지않아 인공장기, 나노로봇, 인공지능 등 융합기술의 발전으로 질환으로부터 벗어나고 삶과 죽음을 스스로 손에 쥘 수 있는 세상과 마주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책이 출간된지 5년 쯤 지났으니 지금은 이미 현실이 됐거나, 예정된 시간을 앞당기고 있을지 모른다.
트랜스 휴머니즘.
융합기술의 갑옷을 입고 인간강화와 생명연장에 다가서는 진격의 물결을 멈출 수 없다. 그러나 무한이윤을 추구하는 맘몬에 지배당할 우려와 철학적윤리적종교적 차원의 고민거리도 따라붙는다.
오랜 수명을 누린 후 우리는 스스로의 뜻에 따라 인공장기의 작동을 멈출 수 있을까. 인공장기를 통해 수집된 정보는 누가 관리해야 할까. 수명이 극적으로 늘어나고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난다면 인간은 더 행복해질까. 뇌를 복제할 수 있을까. 모든 기억을 데이터로 바꿀 수 있을까. 데이터를 몇 번이고 다운로드 해 영생을 누릴 수 있을까. 인간은 어디까지 강화될 수 있을까. 공정한 경쟁은 가능할까. 불평등과 착취는 없을까. 기술이 악용되지는 않을까. 등등.
아무튼 의학과 과학은 신의 영역을 잰걸음으로 제치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세상에 다가서고 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죽음을 생각한다. 아무리 인간이 강화되고, 생명이 연장되더라도 죽음에 대한 사유는 별도 영역이다.
이태 후면 정년이다. 지나온 일상도 조금씩 정리가 필요하다.
삶도 육체도 그렇다. 물론 건강하게 더 많은 시간을 누리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죽음을 마주하는 데 낯설지 않아야 한다.
몇 해 전 장기조직기증을 등록했다. 인터넷으로 간단히 가능하기에 주저없이 했는데, 함께 하려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은 직접 등록기관을 방문해야 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얼마전에야 마쳤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종이 한 장에 연명의료 중단을 새긴다.
국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인구가 300만명을 넘어섰다.
사회적으로도 존엄한 죽음에 대한 인식이 다져지고 있다.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에 사람들의 눈길이 머문다. 죽음을 결정하는 방법에 대한 논의도 시작됐다.
연명의료 중단은 죽음에 대한 소극적 자기 결정이다.
법적 문제나 사회적 담론이 필요한 안락사, 의사조력자살 등의 적극적 자기 결정에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는 여건 조성에 지혜를 모을 때다.
웰빙만치웰다잉도 소중하다.
고령층이 두터워지는 만큼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한 대국민 홍보, 인식 개선, 인프라 확충 역시절실하다.
호스피스 대상 질환의 확대도 필요하다. 현재는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호흡부전, 만성간경화 등 5개 질환 말기 환자에 제한돼 있다. 게다가 호스피스 병실이 부족하다보니 입원해서 완화의료를 제공받는 입원형 호스피스는 암 환자만 가능하다. 나머지 질환은 집(가정형)이나, 일반병실(자문형)에서 호스피스를 제공받아야 한다.
유수의 대학병원조차 호스피스병동 운영에 머뭇거리는 이유는 적정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의료인력 양성도 요원하다. 호스피스병동이 없는데 어떻게 호스피스 전문인력을 배출할 수 있을까.
멕시코 전통축제 죽은자의 날을 소재로 만든 디즈니 애니메이션 코코를 보면, 죽은 이를 기억하면 그의 영혼은 저승으로 떠나지 않는다. 죽은이들은 기억과 유대를 통해 살아있는 이들의 삶 속에 새겨지고 가족 간 사랑으로 이어진다.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순간이 고통과 슬픔만으로 채워지지 않기를 원한다. 서로를 기억할 수 있는 평온한 시간이 주어지길 바란다.
존엄한 죽음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누구나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는 세상은 그냥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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