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플 플러스
정신의학 일가 이루고 개원가로 간 까닭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양극성 장애, 정신약물 등 정신건강의학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박원명 가톨릭대 명예교수(우영섭박원명정신건강의학과의원)가 평생동안 가슴에 새긴 구절이다.
그는 올해 2월말 대학을 정년퇴임한 후 개원가에서 새 길을 찾고 있다.
그동안 한국형 양극성장애 약물치료 알고리듬과 지침서(KMAP-BP2002), 한국형 우울장애 약물치료 알고리듬과 지침서(KMAP-DD2003), 양극성장애 교과서(2009), 우울증 교과서(2012), 임상신경정신약물학 교과서(2009) 등의 초판 대표저자를 맡거나 정기적인 개정판 발간을 이끌었다.
이와 함께 ▲양극성 조증 환자에서 Risperidone의 효능에 대한 연구(81개 기관) ▲우울증 환자에서 Paroxetine CR의 효능에 대한 다기관 연구(16개 기관) ▲우울증에서 Tianeptine의 효능, 조울병에서 Aripiprazole의 효능 연구 ▲조울병에 국내 사용 허가된 5 종류 AAP인 RSP, OZP, QTP, ZIP, ARP에 대한 각각의 다기관 임상 연구 ▲양극성 우울증에서 1097명을 대상으로 한 quetiapine의 효능 연구 등 대규모 다기관 약물 임상연구을 주도하면서 평생 과업으로 여겼던 과제를 모두 마무리했다.
지난 2005년 창립을 주도한 양극성장애 전문 연구 포럼 Korean Bipolar Disorders Forum(KBF)에서는 현재까지 대표를 맡고 있다.
대학을 떠난 후에도 환자와 가족, 그리고 국민에게 이어진 끈을 놓지 않는다.
먼저, 지난 2013년에 준비를 시작한 조울병 단행본 편찬이다. 이미 조울병으로의 여행(2015) 조울병에 대한 거의 모든 것(2021) 등 두 권의 책을 여러 전문가들과 함께 펴냈지만, 조울병에 대해 가장 정확하면서도 쉬운 내용으로 또 다른 책을 상재할 계획이다.
성인 ADHD 질환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교육, 전문가 양성, 대국민 홍보를 위한 성인 ADHD 중장기 프로젝트와 TF 활동도 이어간다. 아직 질환에 대한 개념과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성인 ADHD 재평가와 함께 질환에 대한 인식과 치료적 접근 등을 제시할 생각이다.
그는 정신의학에 몸 담았던 지난 40년을 학문적 호기심과 의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진리를 찾기 위한 열정과 고뇌, 그리고 치열했지만 행복하고 따뜻했던 시간이라고 돌아봤다.
지금 그의 시선은 또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예상과 달리 개원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신건강의학과 개원 환경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전문의 취득 후 바로 개원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엔 중견 교수들이 나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교육이나 공부에 대한 수요도 높아졌다. 임상 중심 학술 연구도 흥미로운 분야다. 개원가 위주의 논문도 가능하다. 이를 위한 개원가 학술협의체를 구상하고 있다. 물론 대한우울조울병학회, 대한정신약물학회 내에도 개원가 학술 모임을 만들 계획이다. 외국에서는 이미 개원가 위주의 학술 연구가 활성화돼 있다. 특히 일본은 클리닉 중심 학술연구가 많다. 일부는 임상 4상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동일질환에 대한 오리지널-제네릭에 대한 비교 임상도 이뤄진다.
중견교수들의 개원이 늘면서 개원가 패러다임 역시 달라지고 있다.
개원가에서는 실제적인 임상이 이뤄진다. 임상현장 그 자체다. 실질적인 데이터를 생산하고 거기에 맞는 알고리즘을 개발할 수 있다. 이미 정신건강의학 관련 학회에서도 개원가와의 학술 교류가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중견 교수들이 개원가로 들어오면서 학술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다. 그 분들이 개원가의 임상데이터를 중심으로 학술적인 접근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 저 역시 도움이 되는 부분을 찾겠다.
국내에서는 정신건강의학 세부 분과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성과도 있었다.
각 관련 학회 내에는 부문별 연구회가 결성돼 있고 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진다. 점점 세분화되고 있다. 아시아 권에서는 한국이 독보적이며, 유럽 학회와 견줘도 우위에 있다. 그동안 국내 학회의 노력은 사회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례로 우울증만 해도 과거와는 달리 낙인효과가 거의 없다. 관련 학회들이 오랜시간 애쓴 결과다.
교과서 편찬 작업도 이어간다. 담길 내용에도 눈길이 간다.
지금까지 우울증 교과서와 조울병 교과서를 펴냈는데, 이번에 영문판 교과서 편찬작업을 하고 있다. 다행히 스프링거와 연결돼서 올해 연말까지 세부 수정을 마무리하고 내년 초 출간한다. 책 구성은 기본적인 교과서 양식을 따르면서 흥미로운 섹션을 추가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항우울제는 과연 우울증에 효과가 있나 같은 도발적 주제를 다룰 계획이다.
우울증 환자가 늘고 있다.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우울증도 예사롭지 않다.
우울증 예방 대책은 단순치 않다. 단적인 결론을 내기 어렵다. 근본적으로는 중고교 교육시스템부터 접근해야 한다. 성적 지상주의, 부족한 윤리교육 등 얘기할 게 많다. 사회적 담론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우울증과 양극성 장애를 감별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노인우울증이다. 데이터가 굉장히 부족하다. 치매를 연구하는 의사들은 많지만 노인우울증은 그렇지 않다. 노인층은 대부분 다제 약물을 복용하기 때문에 노인우울증에 대한 약물 가이드라인도 필요하다. 미개척 분야이고 연구도 많지 않기 때문에 개원가에서 집중해서 살펴 볼 부분이다. 치매 환자는 인지능력이 떨어지지만, 노인우울증 역시 그렇다. 그런데 약 처방은 전혀 다르다. 고령 인구가 많아지는 상황에서 개원가 중심으로 노인우울증 데이터를 생산하다보면 의미있는 연구 성과를 낼 수 있다. 약물 상호작용을 고려한 고령층에 맞는 노인우울증 약물 처방 가이드라인도 도출할 수 있다.
경두개 자기 자극술(TMS) 시술이 늘고 있다.
중추신경계 관련 질병을 진단하거나 치료하는데 TMS가 이용되고 있지만 검증이 더 필요하다. 실제로 TMS는 보조적인 수단이지 치료에서 우선할 수는 없다. 비보험이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도 있다. 항우울제 투여에도 치료가 잘 안 될 경우 보조적 부가요법으로 고려할 수 있다.
환자들은 정신건강의학과 처방 약물의 중독성의존성에 대한 걱정이 많다. 어떻게 이해시킬까.
의외로 정신과 약 중에 중독성의존성이 있는 약은 많지 않다. 그런데 만성질환의 경우 평생 약을 먹겠다는 마음가짐인데, 정신과 약물은 끊을 준비부터 한다.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요즘 약이 너무 좋다. 진료 때 환자에게 약에 대한 확신을 주려고 한다. 상담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약으로 충분히 질환이 개선된다. 의사 역시 약물에 대한 전문성이 필요하다. 수면 장애 치료에서 항우울제 계열에 좋은 약이 있는데도, 일부에서는 처음부터 졸피뎀, 스틸녹스 성분을 쓰는 경우가 있다. 환자 입장에서 보면 나중에 문제될 수 있다. 예전에 학회 활동은 정신 질환을 제대로 알리고 낙인을 낮추고, 없애는데 중점을 뒀지만, 이제는 약물에 대한 환자 교육에 주력하고 있다. 어떤 질환에 대해 장기적인 유지 치료가 필요한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고 약을 반드시 드시도록 한다. 긍정적인 것은 요즘 환자들의 이해도가 높다.
신진 의학자나 후학들에게 거는 기대는 크다.
학문 발전을 위해서는 뒷받침하는 새로운 후학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지금 아무리 잘 운영되는 분야도 후학들이 없으면 도태된다. 신진 의학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야 한다. 개원가 젊은 선생님들은 펠로우를 거치지 않은 분들이 많다. 그렇지만 의외로 학술 강연을 맡기면 호응이 크다. 이 분들을 교육시키는 것도 제 몫이다. 스스로 아직 준비가 안 돼 있다고 느끼는 젊은 의사들에게 다른 선생님들의 경험과 역량을 공유할 수 있다. 개원의 스스로 독립적으로 학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제대로 개발해 주고 지원하고 싶다.
정신건강의학과를 선택하는 의사들에게 어떤 얘기를 전하고 싶을까.
저는 고등학교 때 우연히 프로이트 책을 접한 후, 세상은 모든 게 정신 세계를 위해서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과였지만 정신 영역에 대한 끌림이 의대로 향하게 했다. 그리고 당연히 정신과를 지원했다. 전문과를 선택할 때 유행하는 트렌드를 좇는 경향이 있다. 물론 개인이 좋아하는 분야가 트렌드와 맞으면 더 바랄 게 없다. 그러나 대부분 그렇지 않다. 정신의학을 공부하는 경우 지금의 트렌드보다는 1020년 후 학문으로서 발전 가능성을 살피고 판단해야 한다. 의사로서 국민과 학문을 위해 할 게 있는지 여부가 판단의 가늠자가 되길 바란다. 환자를 진료하면서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거기에서 기쁨을 느끼고, 경제적 안정은 자연스레 뒤따라온다고 생각해야 한다. 앞뒤가 바뀌면 의사로서 행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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