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플 플러스
<span class='label radius small' style='background-color:#f44336'>이촌실록</span> 51년전 전문의 고시 의협서 치렀다는데?
1973년 2월 15일자 611호 [의협신문]에는 의협이 관장한 첫 전문의 자격시험 실시 기사가 실렸다.
의협은 1972년 전문의 고시업무를 보사부(현 보건복지부)로부터 이관 받아 이듬해인 1973년 2월 13일 의협의 관리감독 하에 첫 의사 전문의 자격시험을 치렀다.
이날 실시된 제15회 전문의 자격시험은 우리나라 국시사상 처음으로 민간단체가 주관한 시험이었다는 점에서 지대한 관심을 끌었고, [의협신문]은 당시 전문의 자격시험 첫 실시에 따른 진행과정을 상세히 보도했다.
50년도 전의 일이니, 모든 것은 아날로그였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시험 3일 전인 2월 10일부터 각 학회별로 비밀리에 문제를 선택하고, 12일 의정부 모 호텔에서 밤샘 교정, 인쇄 작업을 거쳐 13일 오전 8시 30분에 시험장에 문제가 도착했다.
이 기간동안 선택위원들은 멀리는 수원과 유성에서, 가깝게는 서울의 각 호텔 등에 학회장 책임 하에 억류되어, 개인 행동을 못하도록 감시(?)당했다 한다.
출제 교정 과정도 재미있다.
당시 손글씨로 문제를 배껴 쓰는 필경사 9명과 이를 복사하는 프린트사 1명이 동원됐는데, 이들에게도 각각 교정위원이 붙어 보안이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시험장 배정도 007 작전을 방불케 한다.
시험 전날인 12일 오후 이문호 고시위원장의 진두지휘 아래 좌석을 배정하고 문을 밀폐한 후, 13일 오전 9시 40분에야 수험생들을 입장시키는 치밀한 작전을 쓰기도 했단다.
시험 당일 오전에는 이문기 보사부 의정국장, 지금으로 치면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국장이 시험장을 방문해, 상황을 둘러보기도 했다.
그해 전문의 자격시험 각 과별 응시자수는 내과 70명, 외과 116명, 산부인과 82명, 소아과 47명, 정형외과 57명, 예방의학과 23명, 신경외과 21명, 신경정신과 22명, 이비인후과 32명, 흉부외과 20명 ,안과 9명, 병리과 3명, 피부과4명, 마취과 9명, 결핵과 8명, 비뇨기과 9명 등 총 552명이었다.
1973년 2월 15일자 611호 신문이 더 보고 싶다면?
에필로그
전문의 자격시험은 1973년부터 대한의사협회가 보건복지부로부터 위탁받아 실시해왔으나, 2014년 9월 26일자로 전문의 자격시험 및 수련관련 업무 위탁에 대한 기준이 개정되면서 감독권한이 의협에서 대한의학회로 이관됐다.
- 비대면진료 허용하고 약은 약국? 환자·소비자단체 "반쪽짜리 제도 거부"
- 후종인대골화증 - 알고 나면 두렵지 않습니다
- 군의관·공보의 복무기간 단축법 또 나왔다, 이번엔 6개월 단축
- 김택우 회장, 장동혁 국힘 대표 만나 전달한 7대 현안은?
- 마운자로·위고비 ‘오남용우려의약품’ 지정 안하나 못하나
- 내년 건강보험료율 동결...의협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우려"
- 약 배송 이슈, 결국 탄핵으로? 권영희 약사회장 불신임 촉구 나와
- 인하대병원 전건휘 전공의 '젊은 신경외과의사상'
- '건보재정 지속가능성' 우려에도 내년도 건강보험료율 '동결' 결정
- 마취과 도수치료 처방했다고 5개월 진료제한? '취소' 판결
댓글 0